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더 후/평가와 영향력 (문단 편집) == 음악 성향 == 더 후의 음악은 보통 [[하드 록]]과 [[프로그레시브 록]]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. 이는 [[더 후]]의 전성기 시절 음악이 [[하드 록]], [[프로그레시브 록]]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. 한편 초창기에는 [[비틀즈]], [[롤링 스톤스]]와 마찬가지로 [[블루스]]와 [[로큰롤]], [[소울]] 음악을 기반으로 곡을 작곡했기에 당대 유행하던 로큰롤로 분류되거나, 혹은 [[R&B]]와 [[파워 팝]],[[개러지 록]]으로 분류되기도 했다.[* [[R&B]](리듬 앤 블루스)라는 용어는 당시에는 [[블루스]], [[로큰롤]], 소울 등의 흑인음악을 통칭하는 용어였다. 그러나 소울 음악이 록(블루스, 로큰롤)뮤지션들과 독자적으로 발전하다보니 [[R&B]]라는 용어는 소울 음악을 칭할때만 쓰는 표현으로 축소되었다.] 실제로도 더 후 커리어 초기, 즉 1집 데뷔 이전에는 고전 소울 음악 혹은 로큰롤 곡, 블루스 곡들을 커버하였다. 이는 당시 로큰롤 곡들을 좋아하던 밴드 멤버들의 성향과, 당시 유행하던 R&B의 기류에 맞춰가던 것에서 기인했다. 하드 록 및 로큰롤로 분류되는 1집의 대성공 이후로 더 후는 로큰롤을 기반으로 각종 실험을 하게 된다. 이를테면 2집에서는 약 2분짜리 로큰롤 곡 6개를 붙여 파트가 나뉘어져 있는 약 10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[[A Quick One, While He's Away]]를 발매하기도 했다. 이 곡은 최초의 [[프로그레시브 록]] 넘버 중 하나라고 평가받기도 한다. 또한 3집에서는 기존의 [[파워 팝]] 성향을 이어가는 동시에 아예 앨범 전체의 유기성을 중시하는 [[콘셉트 앨범]]을 최초로 제작하기도 했다. 참고로 3집이 발매된 시기인 1967년은 미국과 영국 음악계에 한창 [[사이키델릭 록]] 열풍이 불었을 때로, 즉 더 후는 이러한 기류와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음악적 실험을 계속해나간 것이었다. 이러한 콘셉트 앨범에 대한 실험을 계속해나간 결과, 4집인 [[Tommy(음반)|Tommy]]는 영화로까지 제작될 정도로 스토리라인과 음악성 모두가 뛰어나다고 평가받았다. 한편 이 시기부터 더 후는 기존의 블루스와 로큰롤 성향을 탈피하기 시작하여 [[하드 록]]을 완성시키는 실험 또한 시작한다. 원래 더 후 본인들과 [[롤링 스톤스]], [[킹크스]] 등이 만들어 낸 하드 록이라는 장르는 블루스와 로큰롤을 기반으로 두고 있었다.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[[레드 제플린]]의 헤비 메탈 넘버들도 블루스를 기반하고 있었다. 그러나 1970년대부터 더 후는 하드 록에서 블루스와 로큰롤을 완전히 배제시키기 시작했다. 즉 우리가 현재 아는 ‘현대적이면서 파워코드와 신디사이저 소리로 이루어져 있는 하드 록’의 개념을 바로 더 후가 창시했던 것이다. 이는 당대 음악씬에서는 매우 신선하고 충격적인 실험이었으며, 이 때문에 당연히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. 그리고 이러한 ‘블루스의 영향력을 배제한 하드 록,’ 그리고 ‘프로그레시브 록’이 바로 더 후의 음악의 기본 뼈대가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